아르누보 가구 디자인 - Art Nouveau Funiture Design
- 가구디자인의 역사
- 2022. 11. 26.
아르누보 (Art Nouveau) 시대의 가구 디자인
유기적인 선의 새로운 방식
19세기 말즘 식물 덩굴 형태의 구불한 선적 모양을 특징으로 하는 아르누보 양식은 각 나라마다 발현된 배경과 표현방식이 조금씩 다릅니다. 역사주의적인 양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이 새로운 형태의 개념으로 탐구하고자 했던 것이 '아르누보'이며 이는 유럽 전 지역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아르누보는 하나의 저항운동으로도 보입니다.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아르누보 디자인은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동적인 선들의 배열이 매우 독창적이고 장식적으로 느껴집니다.
아르누보는 1900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대중들에게 알려지는 큰 계기가 됩니다. 독일인 화상 사무엘 빙 이 만든 '아르누보의 방'이 유명세를 얻으면서 이때부터 '아르누보'의 단어가 대중화가 됩니다. 이곳에는 외젠 가야르 같은 디자이너의 곡선으로 만들어진 가구들로 채워졌었습니다. 이와 같이 아르누보 양식은 곡선적인 것에서 점차 기하학적인 직선의 형태로 변화합니다. 빙은 하나의 통합된 개념의 생활공간을 만들고자 '메종 드 아르누보 '라는 상점을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아르누보의 특징은 실내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통합하는 종합 예술의 개념으로서 오늘날 실내디자인의 기초로 여겨집니다.
아르누보 가구에서 직선의 느낌은 거의 없으며 유기체들이 자유로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앙상블'과 같습니다. 아르누보는 벨기에에서 처음으로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이곳에서 빅터 오르타가 아르누보 양식으로 건물을 설계하여 전문가들로부터 찬사를 받게 됩니다. 가구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앙리 반 데 벨데 또한 새로운 형태로 아르누브 풍의 가구들을 디자인하면서 아르누보의 발전에 이바지하게 됩니다.
독일에서는 아르누보 양식이 '유겐트스틸'이라는 이름으로 뒤늦게 알려지게 됩니다. 독일의 아르누보는 앙리 반데 벨데의 영향이 매우 컸는데, 건축물에 들어가는 모든 물품을 하나의 유기체로 디자인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습니다. 가구 디자이너로는 대각선 받침대가 있는 의자로 유명한 리하르트 리머슈미트가 있습니다. 그는 목재의 질감만으로 장식은 충분하다 여겨 오직 가구의 형태에만 몰입했습니다. 그의 '음악실을 위한 의자'는 현재까지도 활발히 생산되고 있는 베스트셀링 제품입니다.
아르누보가 가장 오랫동안 인기 있었던 곳은 바로 프랑스이니다. 수도인 파리 이외에도 '낭시'라는 작은 지역에서도 아르누보의 양식이 발전하게 됩니다.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꽃과 식물을 주제로 작품을 만든 엑토르 귀마르와 에밀 갈레가 아르누보의 발전에 기여한 인물들입니다. 에밀 갈레는 가구 디자이너이자 유리공예가였습니다. 그는 가구 공방을 운영했는데 1902년 '초원의'빛이라는 의자는 꽃을 소재로 한 낭시 파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작품으로 이전 시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형태의 디자인입니다.
루이 마조렐은 뛰어난 기술을 보유한 장인으로 부드러운 선과 감각으로 비평가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았습니다. 그의 1903년 작품 '오키드 책상'은 우아하고 세련된 비례미를 갖춘 가구입니다.
엑토르 귀마르는 건축가이자 자칭 예술가였습니다. 그가 제작한 1897년 '흡연실 의자'는 비대칭적인 형태를 아르누보풍으로 잘 녹여낸 작품입니다. '파리 지하철 입구'라는 작품 역시 귀마르의 예술적인 면모를 잘 드러내는 작품으로서 현대에도 프랑스 아르누보의 상징으로 꼽힙니다.
대부분 아르누보 가구들은 과거에 대한 저항정신으로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여 자유롭게 표현되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사치스럽고 과한 장식들로 인해 결국은 모더니즘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직선으로 표현된 아르누보
영국에서 아르누보의 양식은 독특한 특징을 지닙니다. 일반적인 아르누보와 다르게 유기적인 선이 보이지 않습니다.
찰스 레니 매킨토시는 영국의 디자이너로, 아르누보 작가 중 가장 독창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입니다. 어려서부터 남달랐던 매킨토시는 '글라스 고우 미술학교'를 다니는 동안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습니다.
그는 항상 새로운 디자인을 위해 노력했으며 건축가, 가구 디자이너, 실내디자이너로 활동하였습니다. 1896년 글라스 고우 미술학교의 설계를 하게 되며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됩니다. 이 미술학교 안의 가구들의 디자인이 굉장히 독창적입니다. 그리고 같은 해 캐더린 크랜스턴으로부터 자신의 찻집을 설계해달라는 의뢰를 받게 됩니다. 그녀는 남녀 구분 없이 공간을 향유할 수 있는 우아한 찻집을 원했으며, 그녀는 모두 다섯 개의 찻집을 열게 되었는데 '아가일'거리의 찻집을 위해 매킨토시는 '아가일 의자'를 디자인합니다. 이 의자는 높은 등받이가 특징으로 어두운 참나무로 만들어진 의자로 편한 의자는 아니었지만 매킨토시를 가구 디자이너로서 유명하게 만든 작품입니다. 이 당시 매킨토시는 기능적인 부분보다는 미적인 면을 더 높이 추구했습니다. 사용감은 불편하지만 등받이가 높은 탓에 미적으로 우아했으며, 옆사람의 시선이 닿지 않아 공간을 구분 지을 수 있어 좋은 점도 있었습니다.
또한 그의 작품 '힐 하우스 체어'는 통합된 실내장식의 개념이 잘 실현된 공간으로 추상적인 20세기의 영원한 디자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비엔나 분리파(Vienna secession)의 가구 디자이너들
오스트리아의 아르누보 역시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이곳에선 독자적으로 '세셋션'(Secession)이라는 이름으로 아르누보 양식을 발전시켰습니다. 오토 와그너는 세셋션 운동의 주로 인물로 그의 디자인은 매우 현대적입니다. 바그너의 건축 작품인 ' 빈 왕립 우체국 은행'을 위해 디자인된 의자는 매우 단순하지만 기능에 충실했으며 그의 모던한 감각이 묻어 나오는 작품입니다. 다리 끝부분과 팔걸이 윗부분이 금속으로 장식되어 의자에서 가장 많이 부딪히는 부분을 보호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장식보다 기능을 중요시한 와그너의 디자인 철학은 이후 모더니즘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요제프 호프만은 세셋션의 공동 창립자입니다.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였던 호프만은 스코틀랜드의 매킨토시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매킨토시의 기하학적인 선에 반한 호프만은 콜로만 모저와 '비엔나 공방'을 설립해 가구와 은제품을 생산했습니다. 호프만의 디자인을 보면 기하학적인 양식이면서 주로 사각형과 원, 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앉는 기계'는 1908년 비엔나 예술 전시회에서 첫 공개되었습니다. 이전 의자들과는 달리 기능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며 목재로만 만들어진 작품으로서 그의 디자인 철학인 기능주의가 담겨있습니다.
본 내용은 도서 [서양 가구의 역사] 와 월간디자인을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