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딸라의 역사 history of littala
- 북유럽 그릇 디자인
- 2022. 11. 23.
이딸라의 연도별 역사 history of littala
1880년 초반, 스웨덴 출신의 페트루스 마그누스 아브라함손은 핀란드 남부의 작은 마을에 주식회사를 설립했습니다.
당시 핀란드에는 유리세공 장인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는 17명가량의 유리공예 장인들을 모두 스웨덴에서 데려왔습니다. '이딸라' 최초의 디자이너 알프레드 구스타프손은 1903년 자신의 작품 '위대한 사람들'을 선보였고, 이는 당시 핀란드를 지배하고 있던 러시아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담았다고 알려졌습니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이딸라에서 활동한 장인들은 대부분 타국에서 건너온 사람들이었으며, 이들은 자체적인 디자인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1930년대에 이르러서야 카를홀라와 병합하면서 제품이 출시되었습니다. 이 꽃병은 80년이 넘었지만 지금까지도 이딸라의 베스트 셀링 상품입니다.
이딸라의 거듭된 성공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 기술자들은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들과 적극 소통을 하였으며, 품질을 최우선으로 여기며 하나의 제품에 다양한 색상을 적용하는 등 소비자의 욕구를 다각면에서 충족시켰습니다.
1940년대부터는 요란홍엘과 에르키 베산토 카이프랑크와 타피오 빌칼라 4명의 디자이너들이 분야를 맡아 이딸라를 주로 이끌어가게 됩니다. 1950년대에는 핀란드 디자인의 황금기였는데, 밀라노 트리엔날레에서 무려 25관왕을 휩쓸었습니다.
1960년대부터는 이딸라는 단일 브랜드가 되었습니다. 카를홀라 공장은 1980년대까지 운영이 되다 , 1994년 이딸라에 흡수됩니다. 1980년대 초반 이딸라 제품의 대부분이 수출용으로 만들어질 만큼 전 세계적인 제품으로 성장합니다.
1990년, 이딸라는 아라비아와 로스트란드, 구스타프베리를 인수했던 하크만 그룹에 인수됩니다.
이후 몇차례 더 주인이 바뀌다 피스카스가 마지막으로 인수합니다.
이딸라의 주요 디자이너들 Major Designers of littala
알바르 알토
핀란드를 대표하는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입니다. 헬싱키 공과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한 알바르 알토는 1920년대 졸업을 한 뒤 2년 후 핀란드의 한 지역에 건축 사무소를 차려 주택을 설계하는 일을 했습니다.
1930년대에는 사무실을 헬싱키로 옮겼으며, 그 후로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맡으며 1940년이 될 쯤 뉴욕 만국박람회의 핀란드관을 도맡아 디자인하며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의 활동범위는 매우 광범위했으며, 건축뿐만 아니라 유리 공예, 텍스타일 등 폭넓게 디자인 활동을 이어나갑니다. 당시 핀란드는 경제적으로 급성장을 하며 이러한 영향과 맞물려 크게 성장을 하게 됩니다. 알바르 알토는 스칸디나비아 건축, 디자인에서 기능주의와 모더니즘을 발전시켰습니다.
알바르 알토의 디자인은 종합예술적으로 하나의 주제가 아닌 여러 분야의 예술을 결합합니다. 예를 들어 집을 설계한다면,
단순히 집 자체만 설계하는 것 뿐만아니라, 그 안의 인테리어까지 고려하는 디자인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하나의 디자인 결정체가 되어 완전한 형태가 됩니다. 특이하게도 그는 그의 아내와도 함께 디자인을 하였고 그의 아내이자 건축가였던 '아이노 알토'가 1949년 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함께 디자인을 하였습니다.
알바르 알토가 디자인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이유는 그의 철학과 신념 덕분입니다. 그는 "디자인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보통 사람들의 낙원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삶에 있어 디자인의 영향을 크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디자인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만, 환경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고 믿었으며, 지속 가능한 디자인을 위해 힘썼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면 직감적이고, 자연스러움이 묻어납니다.
현재에도 핀란드에는 그의 생전 발자취를 볼 수 있는 투어 상품이 있을 정도로 쉽게 그의 디자인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가 생전 살았던 집과 스튜디오 이외에도 시립도서관을 설계할 당시 디자인한 스툴은 현재까지도 베스트 셀렝 제품입니다.
핀란드의 호수 둘레의 곡선을 본따 만든 사보이 꽃병도 그의 대표작입니다.
하나의 꽃병을 만들기까지 7명의 장인의 손길이 닿고 12단계의 작업 과정이 있어 정교하며 섬세한 작품으로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헤이키 오르볼라
헤이키 오르볼라는 현대 가장 중요한 인물로 평가됩니다. 그는 1960년대 핀란드를 대표하는 유리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디자이너로서 경력을 시작합니다. 1970년대 이딸라에서 유리컵세트를 출시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헤이키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그의 작품도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집니다.
그는 호기심과 예술가적인 성향이 뛰어나기 때문에 다른 작가와도 콜라보작품을 많이 진행했습니다. 그는 수많은 북유럽 디자인을 탄생시켰으며 심플하면서 컬러가 다양한 제품을 주로 만듭니다. 그가 새로이 선보인 색상만 46가지입니다.
특히 유리 제품은 염료의 가격과 기술 난이도에 따라 가격에 매우 다른 데, 일반적으로 붉은 색상의 제품 가격이 가장 높습니다. 재미있는 부분은 같은 제품이라도 구입처에 따라 밑부분에 찍히는 스탬프 모양이 다릅니다. 헤이키는 카이프랑크 디자인상을 수상하였고, 그 후 2022년 교수직에 임명되었습니다. 핀란드에서는 교수를 국가가 임명하기에 매우 인정을 받은 부분입니다.